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받지 않는다. 오늘처럼 '보이스 피싱'이 급상승 검색어에 오른 날이면 더 그렇다. 그런데 소개팅 주선자가 번호를 넘겨준 뒤의 '첫 연락'은 어떻게 해야 할까. 2021년 미국 연구에서 사람들은 전화가 문자보다 훨씬 어색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 통화한 쪽이 더 강한 연결감을 느꼈고 어색함은 더 크지 않았다. 우리가 문자를 고르는 이유는 상대가 아니라 '내가 느낄 어색함'을 피하려는 쪽에 가깝다는 뜻이다. (사진) 받을까, 말까. ■ ① 예상과 결과가 갈린 실험 — 전화는 어색하지 않았다 시카고대 아밋 쿠마르와 니컬러스 에플리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지인에게 다시 연락하게 했다. 연락 전 참가자들은 전화가 이메일보다 더 어색하고 불편할 거라고 예측했고, 고를 수 있다면 이메일을 선호했다. 하지만 무작위로 전화와 이메일에 배정해 실제로 연락하게 하자, 전화를 건 쪽이 상대와 훨씬 더 가깝게 연결됐다고 느꼈고 어색함은 예상만큼 크지 않았다. 다른 실험에서는 낯선 사람과 영상·음성·문자 가운데 하나로 대화하게 했는데, 음성만으로도 영상 통화 못지않은 유대감이 생긴 반면 문자는 그에 못 미쳤다. 매체를 고를 때 사람들은 '어색함'을 과대평가하고 '연결감'을 과소평가한다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다. ▷ 첫 연락, 문자 vs 전화 — 연구가 말하는 장단점 자료: Kumar & Epley(2021)·Schroeder 외(2017)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 (사진) 목소리는 글이 숨기는 것을 드러낸다. ■ ② 목소리가 전하는 것 —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같은 연구실의 줄리아나 슈뢰더 연구팀은 2017년 논문 '인간화하는 목소리(The Humanizing Voice)'에서 같은 내용의 의견이라도 글로 읽을 때보다 목소리로 들을 때 말한 사람을 더 사려 깊고 지적인 존재로 평가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억양과 말의 속도, 잠깐의 멈춤이 '생각하는 마음'의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소개팅에 적용하면 이렇다. 문자만 오가는 동안 상대는 사진과 몇 줄의 소개로 이루어진 '프로필'로 남는다. 목소리를 한 번 들으면 그 프로필이 '사람'이 된다. 첫 만남에서 느끼는 거리감의 상당 부분은 여기서 미리 줄어든다. ▷ 모르는 번호 시대의 첫 연락 3단계 · 예고 문자 누구 소개인지·내 이름·통화 가능 시간 · 짧은 통화 10분 안팎, 만남 날짜·장소만 정한다 · 확인 문자 정리 한 줄 + 기대 한 줄 전화를 먼저 거는 쪽보다, 문자로 예고한 뒤 상대가 고른 시간에 거는 쪽이 받을 확률이 높다 (사진) 예고 → 통화 → 확인. [✔ 솔직한 체크포인트] 보이스 피싱이 일상이 된 시대의 매너는 '예고 없는 전화는 걸지 않는다'다. 첫 문자에 주선자 이름을 반드시 적고, 상대가 문자가 편하다고 하면 그 선택을 따른다. 전화를 안 받았다고 서운해할 일도 아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를 거르는 건 요즘 기본 설정이다. 통화는 짧게, 만남을 정하는 용건만으로 끝내는 게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공공기관 직장인이라면 점심시간 직후나 퇴근 직후처럼 상대도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대를 예고 문자에 적어 두는 게 좋다. '연락 주셔도 되고, 편하신 시간 알려 주시면 제가 걸게요' 한 줄이면 선택권은 상대에게 가고, 통화의 어색함은 연구가 말한 대로 생각보다 작다. (사진) 첫 통화가 끝난 뒤. ■ 한 줄 정리 주선자에게 번호를 받았다면 순서는 '예고 문자 → 짧은 통화 → 확인 문자'다. 첫 문자에 주선자 이름과 내 이름, 통화 가능한 시간대를 적어 모르는 번호의 경계를 풀어 주고, 통화는 10분 안에 만남 날짜·장소만 정한다. 상대가 '문자가 편하다'고 하면 그 선택을 존중하되, 만나기 전날 짧은 안부 통화를 한 번 제안해 보자. 목소리를 한 번 들은 사이는 첫 만남의 어색함이 절반쯤 줄어 있다. ■ 출처 · Kumar & Epley (2021), 「It's surprisingly nice to hear you」,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 Schroeder, Kardas & Epley (2017), 「The Humanizing Voice」, Psychological 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