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열 명, 여자 열 명이 있다. 한쪽이 마음에 드는 순서대로 고백하고, 다른 쪽은 받은 고백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한 명만 '보류'해 둔 채 나머지를 거절한다. 거절당한 사람은 다음 순위에게 간다. 이 규칙을 끝까지 돌리면, 서로 눈이 맞아 지금 짝을 두고 달아날 두 사람이 한 쌍도 없는 짝짓기가 반드시 완성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고백한 쪽에 유리하다. 이번 주는 노벨상 주간이다. 10월 5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12일 경제학상까지 수상자가 차례로 발표된다. 2012년 경제학상이 바로 이 '짝짓기 문제'에 돌아갔다. 먼 얘기만은 아니다. 싱가포르 정부가 최근 시범 운영을 시작한 데이팅 플랫폼 '퍼스트데이트'가 이 알고리즘을 쓴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9월 30일 보도했다(매일경제 10월 1일 인용 보도). (사진) 짝짓기는 수학의 문제이기도 했다. ■ ① 1962년의 질문 — 아무도 달아나지 않는 짝은 가능한가 수학자 데이비드 게일과 로이드 섀플리는 1962년 '대학 입학과 결혼의 안정성'이라는 논문을 냈다. 두 사람이 정의한 '안정'은 이렇다. 지금의 짝보다 서로를 더 좋아하는 두 사람, 그러니까 함께 달아날 이유가 있는 쌍이 하나도 없는 상태다. 이들은 남녀 수가 같다면 각자의 선호가 어떻든 안정적인 짝짓기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그것을 찾아내는 절차까지 내놓았다. '지연 수락(deferred acceptance)'이라 불리는 방법이다. ▷ 게일-섀플리 '지연 수락' 절차 · 고백 1순위에게 · 보류 최선만 남김 · 재도전 다음 순위로 · 확정 거절이 멈추면 자료: Gale & Shapley(1962) 거절당한 사람이 없을 때까지 2~3단계를 되풀이한다. 핵심은 '보류'다. 받는 쪽은 첫 고백에 바로 답하지 않고, 더 나은 제안이 오면 언제든 갈아탈 수 있다. 그래서 절차가 끝났을 때 '저 사람이 나았는데' 하며 서로를 아쉬워하는 쌍이 남지 않는다. ■ ② 반전 — 같은 '안정'이어도 고백한 쪽이 가장 좋은 짝을 얻는다 안정적인 짝짓기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다. 게일과 섀플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고백하는 쪽에서 절차를 돌리면, 고백한 사람 모두가 '가능한 안정적 짝짓기들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좋은 상대'와 맺어진다. 이후 연구에서 그 이면도 밝혀졌다. 기다린 쪽은 가능한 안정적 상대 가운데 가장 덜 좋아하는 사람과 맺어진다. 이유는 직관적이다. 고백하는 쪽은 원하는 순서대로 위에서부터 두드려 보지만, 기다리는 쪽은 자기에게 들어온 고백이라는 좁은 메뉴 안에서만 고를 수 있다. 내가 마음에 둔 사람이 나를 꽤 좋아했더라도, 그가 자기 1순위에게 먼저 가서 자리를 잡으면 내게는 고백이 오지 않는다. ▷ 같은 규칙, 다른 자리 자료: Gale & Shapley(1962)와 후속 매칭 이론 모든 사람이 상대 전원에 대한 순위를 갖고 있다는 가정 아래 증명된 결과다. (사진) 두드리는 쪽과 기다리는 쪽. ■ ③ 병원과 학교를 거쳐, 데이팅앱까지 이 이론은 반세기 뒤 노벨상으로 이어졌다. 2012년 노벨 경제학상은 섀플리와 앨빈 로스에게 돌아갔고, 선정 이유는 '안정적 배분 이론과 시장 설계의 실천'이었다. 로스는 미국의 수련의와 병원을 맺어 주는 제도가 같은 원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밝히고 이를 고쳐 설계했으며, 뉴욕과 보스턴의 공립학교 배정에도 적용했다. 게일은 2008년 세상을 떠나 수상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싱가포르의 '퍼스트데이트'는 21~35세 공공 부문 직원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 중이다. 여러 명의 프로필을 넘겨 보는 기존 앱과 달리, 관심사·습관·가치관 설문을 바탕으로 매칭 주기마다 단 한 명만 소개한다. 홈페이지에는 '잠재적 매칭 상대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적합한 상대를 찾기가 더 쉬워지는가'라는 물음이 걸려 있다. 배경에는 출산율이 있다. 싱가포르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7명으로, 2024년 0.97명에서 더 내려가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 숫자로 보는 '짝짓기 수학' · 1962년 게일·섀플리 논문 안정 매칭의 존재 증명 · 2012년 노벨 경제학상 섀플리·로스 공동 수상 · 0.87명 싱가포르 2025년 합계출산율 2024년 0.97명 (사진) 선택지는 많을수록 좋을까. [✔ 솔직한 체크포인트] '먼저 고백하면 성공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정리는 모든 사람이 상대 전원에 대한 순위를 갖고 있고, 거절에 비용이 없으며, 선호가 바뀌지 않는다는 가정 위에서 증명됐다. 현실의 고백에는 상처와 눈치가 따르고 마음도 변한다. 가져갈 것은 구조다.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의 선택지는 '내게 온 제안'으로 좁아진다. 퍼스트데이트가 알고리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했는지는 보도에 자세히 나오지 않았고, 이 서비스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은 10월 2일 브리핑에서 다뤘다. 소개팅 뒤 '연락 오면 만나야지' 하고 기다리는 것은, 이 모형에서 보면 불리한 자리에 스스로 앉는 일이다. 60여 년 전 두 수학자가 증명한 것은 용기의 미덕이 아니라 순서의 힘이었다. (사진) 먼저 보낸 한 줄. ■ 한 줄 정리 소개팅이 괜찮았다면 '연락 오면 만나야지' 하고 기다리지 말고 그날 밤 먼저 한 줄을 보내자.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엔 말씀하신 칼국수집 가요.' 게일-섀플리 모형의 교훈은 용기 예찬이 아니라 구조다. 기다리는 사람은 들어온 제안 중에서만 고를 수 있고, 두드리는 사람은 원하는 순서대로 확인해 볼 수 있다. ■ 출처 · 매일경제 「'출산율 세계 최저' 싱가포르 정부가 노벨상 이론 가지고 만든 이것」 (2026-10-01) https://v.daum.net/v/20261001114202727 · Gale & Shapley (1962). College Admissions and the Stability of Marriage. The American Mathematical Monthly, 69(1) · 스웨덴 왕립과학원 2012년 노벨 경제학상 발표(Alvin E. Roth·Lloyd S. Shapley, 안정적 배분 이론과 시장 설계의 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