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짧아졌다. 집에서 이틀을 보내는 대신 외식을 하고 호텔에서 잔다. 장을 볼 때도 이미 조리된 음식을, 당일 먹을 만큼만 산다. 경상일보가 오늘 새벽 전한 '반나절 명절'이다. 그런데 기사에서 가장 눈에 걸린 건 음식이 아니라 말이었다. "명절 가족모임에서 결혼, 연애, 정치, 육아, 월급 등 금기어가 많아져서 이제는 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다섯 개를 빼고 나면, 남는 말이 별로 없다. (사진) 차례상 대신 예약 확인 문자를 보는 명절. ■ ① 금기어 다섯 개를 빼면 남는 자리 결혼, 연애, 정치, 육아, 월급. 이 다섯 개가 금기어가 된 이유는 분명하다. 전부 상대의 현재 상태를 점수로 환산하는 질문으로 쓰여 왔기 때문이다. '결혼은 언제 하냐'는 관심의 표현이었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진도 점검으로 도착한다. 그래서 요즘 명절 밥상에서는 이 주제들이 통째로 금지 구역이 된다. 문제는 그 구역을 걷어 내고 나면 날씨와 교통 정체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화가 사라진 자리는 곧 휴대폰이 채운다. 얼굴을 보러 모였는데 각자 화면을 보다 헤어지는 풍경이 여기서 나온다. 주제를 지우는 대신 문장을 바꾸는 편이 낫다. 같은 관심이라도 상태를 묻느냐 경험을 묻느냐에 따라 받는 쪽의 표정이 달라진다. ▷ 같은 관심, 다른 문장 왼쪽은 상태를 점수 매기는 질문이고, 오른쪽은 이야기를 부르는 질문이다. 궁금한 내용은 똑같다. (사진) 질문 하나를 바꾸면 표정이 먼저 달라진다. ■ ② 짧아진 명절에는 시간이 남는다 '반나절 명절'의 진짜 변화는 일정표에 있다. 음식을 만들고 치우던 시간이 통째로 사라졌다. 외식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저녁이 비고, 다음 날도 비는 경우가 많다. 이 빈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연휴의 기억이 갈린다. 각자 방에서 휴대폰을 보며 보내면 명절이 짧아진 의미가 없고, 오히려 '굳이 모였는데 아무것도 안 했다'는 허전함만 남는다. 반대로 함께 움직이는 일정 하나가 들어가면 짧아진 명절이 여유로운 명절이 된다. 연인과 함께하는 연휴라면 이 빈칸이 기회다. 양가 방문 사이에 두 사람만의 시간 하나를 끼워 넣는 것만으로도, 연휴 전체가 '의무를 치른 기간'에서 '같이 보낸 시간'으로 바뀐다. ▷ '반나절 명절'의 하루 동선 · 간소한 장보기 조리된 음식으로, 당일 먹을 만큼만 · 외식 차리고 치우는 시간이 사라진다 · 숙소 집 대신 호텔에서 하룻밤 · 남는 시간 여기를 비워 두면 각자 휴대폰으로 간다 자료: 경상일보 2026년 9월 22일 보도 '달라진 명절 풍속도' 앞의 세 칸은 이미 바뀌었다. 마지막 칸은 아직 각 가정이 정하는 영역이다. (사진) 비어 버린 시간은, 채워 넣지 않으면 흩어진다. [✔ 솔직한 체크포인트] 금기어 목록이 길어지는 건 사실 진전이다. 예전에는 묻는 사람 마음대로 물었고 받는 사람만 견뎠다. 지금은 적어도 '이건 물으면 안 되는구나'라는 감각이 생겼다. 다만 거기서 멈추면 대화가 사라진 자리에 침묵이 들어앉는다. 묻지 않기로 한 만큼 대신 물을 문장을 준비해 가는 게 다음 단계다. 반대로 질문을 받는 쪽도 기억해 둘 게 있다. 대부분의 무례한 질문은 무례할 의도 없이 어색함을 메우려고 나온다. 짧게 답하고 같은 질문을 되돌려 주면, 그 자리는 대개 거기서 정리된다. (사진) 짧아진 명절을 여유로 바꾸는 건 일정 하나다. 명절은 계속 짧아질 것이다. 차리는 시간이 줄고, 머무는 시간이 줄고, 물을 수 있는 말도 줄었다. 남는 건 결국 비어 버린 몇 시간이다. 그 시간에 무엇을 넣을지는 이번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정해 두는 편이 좋다. 질문 하나, 일정 하나면 충분하다. ■ 한 줄 정리 금기어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대화가 살아나지 않는다. 결혼·연애·정치·육아·월급을 다 빼고 나면 날씨와 교통 정체밖에 남지 않고, 그 자리는 곧 휴대폰이 채운다. 방법은 주제를 지우는 게 아니라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쪽이다. 핵심은 '상태를 평가하는 질문'을 '경험을 묻는 질문'으로 바꾸는 것이다. '결혼은 언제 하냐'는 상대의 현재를 점수 매기는 질문이라 방어밖에 나올 게 없다. 같은 관심이라도 '요즘 어떤 사람들 만나며 지내?'는 이야깃거리를 부른다. '월급 얼마냐' 대신 '올해 일하면서 제일 뿌듯했던 게 뭐였어?'가 그렇다. 묻는 사람의 궁금증은 대개 애정인데, 문장 형태 때문에 심사처럼 전달된다. 연인과 함께 가는 자리라면 두 사람이 먼저 맞춰 둘 것이 있다. 첫째, 대답 담당이다. 결혼 계획을 묻는 말이 나오면 누가 먼저 받을지 정해 둔다. 둘 다 눈치를 보며 침묵하는 3초가 제일 어색하다. 둘째, 탈출 신호다. 자리가 불편해지면 쓸 짧은 문장 하나를 정해 두면 서로 구하러 갈 수 있다. 셋째, 귀가 시간이다. 몇 시에 일어날지 미리 정해 두면 그 자리에서 눈치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명절이 짧아졌다는 건 그만큼 시간이 남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음식 만들던 시간이 통째로 비었는데, 그 시간을 각자 휴대폰으로 보내면 짧아진 의미가 없다. 산책 한 번, 근처 전시 한 곳처럼 함께 움직이는 일정 하나를 미리 넣어 두는 편이 남는 시간을 가장 잘 쓰는 방법이다. ■ 출처 · 경상일보 2026년 9월 22일 보도 '달라진 명절 풍속도' (2026-09-22) https://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