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에서 '재미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 적이 있다면, 순서가 틀렸을 가능성이 크다. 처음 만난 남녀 51쌍의 대화를 녹화해 분석한 연구에서, 남성이 농담을 몇 번 시도했는지보다 두 사람이 '동시에' 웃은 횟수가 여성의 데이트 관심과 더 강하게 이어졌다. 웃기는 능력보다 같이 웃는 순간이 호감을 더 정확하게 보여 줬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보다 앞선 연구는 더 불편한 사실을 하나 보여 준다. 남녀가 말하는 '유머 감각'은 처음부터 다른 뜻이었다. (사진) 같은 순간에 웃는 것, 그것이 신호다. ■ ① '유머 감각 있는 사람'이 좋다 — 그런데 남녀가 말하는 뜻이 달랐다 Bressler, Martin & Balshine(2006)은 이성에게 원하는 조건으로 '유머 감각'을 꼽는 남녀에게 한 단계 더 물었다. 유머를 만들어 내는 상대를 원하는가, 아니면 내 유머를 받아 주는 상대를 원하는가. 답은 갈렸다. 여성은 유머를 만들어 내는 상대, 그러니까 상황을 재치 있게 받아치고 웃음을 만드는 사람을 더 원했다. 남성은 반대였다. 내가 던진 농담에 잘 웃어 주는 상대를 더 원했다. 같은 단어를 쓰면서 한쪽은 '생산'을, 다른 쪽은 '감상'을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소개팅에서 남성이 준비한 개그를 연달아 던지고 여성이 예의상 웃어 주는 장면은, 이 어긋남이 그대로 무대에 오른 것에 가깝다. ▷ 같은 '유머 감각', 다른 뜻 — 남녀가 상대에게 원한 것 자료: Bressler·Martin·Balshine(2006) 개념 정리 · 수치 없음 개인차가 크다. '경향'으로만 읽고, 눈앞의 상대가 어느 쪽인지는 반응을 보고 판단한다. (사진) 웃음은 얼굴에서 가장 먼저 눈가에 나타난다. ■ ② 유머는 재미가 아니라 '관심을 재는 온도계'였다 Li 외(2009)는 유머의 기능을 다르게 봤다. 사람들은 아무에게나 농담을 걸지 않는다. 호감이 있는 상대에게 더 자주 농담을 시도하고, 호감이 있는 상대의 농담에 더 자주 웃는다. 그러니까 농담은 '나 당신에게 관심 있어요'를 직접 말하지 않고 전달하는 방법이고, 웃음은 '나도요'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보면 Hall(2015)의 관찰 결과가 자연스럽게 읽힌다. 남성이 혼자 웃긴 횟수보다 두 사람이 같이 웃은 횟수가 상대의 관심을 더 잘 예측했다. 같이 웃었다는 건 신호를 보내고 받는 교환이 성립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웃긴 사람이 이긴 게 아니라, 신호가 오간 쌍이 이겼다. ▷ 유머가 '관심 신호'로 작동하는 4단계 · 시도 가벼운 농담 하나를 건넨다 · 반응 웃는가, 받아치는가를 본다 · 공유 웃음 둘이 동시에 웃는 순간 · 반복 같은 농담 코드가 다시 나온다 자료: Li 외(2009)·Hall(2015) 개념을 소개팅 흐름으로 정리 3단계가 한 번이라도 생기면 그날 소개팅은 대체로 성공 쪽으로 기운다. 1단계만 반복되면 '웃겨야 하는 자리'가 된다. (사진) 말풍선 두 개가 겹치는 자리에서 웃음이 생긴다. ■ ③ 실전 — 웃기려 하지 말고 '같이 웃을 거리'를 찾는다 첫째, 재료는 지금 여기에서 가져온다. 옆 테이블의 상황, 메뉴판의 이상한 이름, 상대가 방금 쓴 단어 하나를 받아서 살짝 비트는 것이 준비해 온 개그보다 낫다. 그 자리에서만 통하는 농담은 자동으로 '우리 둘만 아는 것'이 되고, 그것이 공유 웃음이다. 둘째, 상대가 던진 가벼운 말에 반응을 아끼지 않는다. 웃음이 관심의 신호라면, 잘 웃어 주는 것은 내가 웃기는 것보다 정확한 호감 표현이다. 셋째, 자기비하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 처음 한 번은 여유로 읽히지만 세 번째부터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읽힌다. 넷째, 상대를 소재로 한 농담은 첫 만남에서는 넣지 않는다. 같이 웃을 확률보다 한 명만 웃을 확률이 높고, 한 명만 웃는 농담은 신호가 아니라 잡음이다. [✔ 솔직한 체크포인트] 소개팅이 끝나고 '나 오늘 재밌었나'를 점검하고 있다면 질문을 바꾸자. '오늘 같이 웃은 순간이 있었나'다.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그 자리는 잘 굴러간 것이다. 없었는데 내가 많이 웃겼다면, 상대는 웃어 주느라 힘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내가 별로 웃기지 못했는데 같이 웃은 장면이 있다면, 다음 연락은 그 장면으로 시작하면 된다. "아까 그 메뉴 이름 아직도 웃겨요." (사진) 헤어지기 전 마지막 웃음이 다음 연락의 첫 문장이 된다. 정리하면 세 문장이다. 남녀가 말하는 유머 감각은 처음부터 다른 뜻이었다. 유머는 재미가 아니라 관심을 보내고 받는 신호다. 그래서 웃긴 사람이 아니라 같이 웃은 쌍이 이긴다. 연휴가 끝나고 미뤄 둔 소개팅이 잡혔다면, 개그를 준비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같이 웃을 거리를 하나 찾겠다는 마음으로 나가면 된다. 그 한 번이 그날 대화 전체보다 많은 것을 말해 준다. ■ 한 줄 정리 실전에서는 '웃기기'를 목표에서 빼는 것부터 시작한다. 첫째, 준비한 개그를 가져가지 않는다. 미리 준비한 농담은 맥락과 어긋나기 쉽고, 어긋난 농담을 세 번 던지면 상대는 '내가 웃어 줘야 하나'라는 부담을 느낀다. 둘째, 지금 여기에서만 통하는 유머를 쓴다. 옆 테이블 상황, 메뉴판 이름, 방금 상대가 한 말의 한 단어를 받아서 살짝 비트는 것이면 충분하다. 이런 유머는 '우리 둘만 아는 농담'이 되어 같이 웃는 순간을 만든다. 셋째, 상대의 농담에 반응을 아끼지 않는다. 웃음은 관심의 신호로 읽히기 때문에, 상대가 던진 가벼운 말에 크게 웃어 주는 것이 내가 웃기는 것보다 호감을 더 정확하게 전달한다. 넷째, 자기비하는 한 번이면 된다. 처음 한 번은 여유로 읽히지만 반복되면 자존감 낮음으로 읽힌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그날 같이 웃었던 장면 하나를 언급하면, 그 농담은 두 번째 만남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된다. ■ 출처 · Bressler, Martin & Balshine (2006), Production and appreciation of humor as sexually selected traits, Evolution and Human Behavior (2006) · Li, Griskevicius, Durante, Jonason, Pasch & Bryan (2009), An evolutionary perspective on humor: sexual selection or interest indica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009) · Hall (2015), Sexual selection and humor in courtship: a case for warmth and extroversion, Evolutionary Psychology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