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앉으면 말문이 막히던 사람과도 나란히 걸으면 말이 풀린다. 기분 탓이 아니다. 박자를 맞춰 움직인 상대에게 호감이 커진다는 실험이 있고(Hove & Risen, 2009), 발걸음이 맞는 두 사람을 지켜본 사람들도 그 둘을 더 친밀한 사이로 평가했다(Miles 외, 2009). 오늘은 추석 연휴 첫날, 내일 밤에는 보름달이 뜬다. 카페 대신 산책을 권하는 이유 세 가지를 정리했다. (사진) 나란히 걸을 때는 시선이 풍경으로 흩어진다. ■ ① 눈을 계속 맞추지 않아도 된다 카페에서 마주 앉으면 대화가 끊길 때마다 서로의 얼굴이 정면에 남는다. 침묵이 곧 '어색함'으로 보이는 구조다. 나란히 걸으면 시선이 앞과 옆, 하늘로 흩어진다. 말이 잠깐 멈춰도 풍경을 보는 시간이 되니 부담이 덜하다. 특히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두세 번째 만남에서는 이 차이가 크다. 정면 눈맞춤은 친밀감을 높이기도 하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는 평가받는 느낌을 준다. ▷ 마주 앉은 대화 vs 나란히 걷는 대화 처음 몇 번의 만남에서는 오른쪽이 훨씬 편하다. (사진) 보폭은 일부러 맞추지 않아도 금세 맞는다. ■ ② 발이 맞으면 마음도 가까워진다 호브와 리슨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상대와 박자를 맞춰 손가락을 두드렸는데, 박자가 맞았던 사람들이 그 상대를 더 좋아했다. 마일스 연구팀은 두 사람이 걷는 모습을 보여 주고 둘 사이의 친밀감을 판단하게 했는데, 걸음이 안정적으로 맞는 쌍을 더 가깝다고 평가했다. 함께 걷는 행동은 말없이도 '우리는 같은 리듬에 있다'는 신호를 주고받는 일이다. 산책은 이 동조가 가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데이트다. ■ ③ 풍경이 대화 소재를 대신 가져다준다 산책 중에는 둘이 같은 것을 본다. 보름달, 불 켜진 창문, 산책 나온 강아지, 문 닫은 가게 같은 것들이다. 같은 대상을 함께 보는 경험은 '무슨 얘기를 하지'라는 부담을 덜어 준다. 질문을 짜낼 필요 없이 눈앞의 것에 대한 한마디로 대화가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어릴 때 추석엔 뭐 했어요?' 같은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넘어가기 쉽다. ▷ 보름달 산책 데이트 대화 3단계 · 풍경으로 시작 달·거리·사람 — 둘 다 보는 것 · 걸음 맞추기 느린 쪽 보폭에 맞춰 걷기 · 잠깐 앉기 벤치에서 열린 질문 하나 · 다음 약속 '다음엔 낮에 걸어요' 깊은 질문은 걸을 때가 아니라 잠깐 멈춰 앉았을 때 꺼낸다. (사진) 깊은 이야기는 잠깐 앉았을 때 나온다. [✔ 솔직한 체크포인트] 동조 연구가 말하는 건 '호감이 커지는 경향'이지 '산책하면 무조건 잘된다'가 아니다. 실험실에서 손가락 박자나 걷는 영상을 다룬 연구이고, 실제 데이트 성사율을 잰 것도 아니다. 또 보폭을 억지로 맞추거나 상대 걸음을 재촉하면 효과는커녕 불편만 남는다. 체력·신발·날씨가 안 맞는 날엔 굳이 걷지 않아도 된다. 핵심은 산책 자체가 아니라, 정면 대치 대신 '같은 방향을 보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연휴를 화면 앞에서만 보내기엔 달이 아깝다. 추석 당일 밤, 한 시간 남짓 걸을 수 있는 산책로 하나만 정해 두자. 카페에서 두 시간 마주 앉아 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사진) 헤어질 때 남는 건 대화의 내용보다 같이 걸었던 리듬이다. ■ 한 줄 정리 산책 데이트는 코스보다 순서가 중요하다. 처음 10분 남짓은 풍경 이야기로 시작하자. '저기 달 보여요?'처럼 둘 다 같은 곳을 볼 수 있는 말이 가장 쉽다. 걷다 보면 보폭이 자연스럽게 맞춰지는데, 일부러 맞추려 애쓰기보다 느린 쪽에 맞추면 된다. 대화가 조금 깊어질 때쯤 벤치나 편의점 앞 의자에서 잠깐 앉는다. 이때가 '요즘 어떻게 지내요' 같은 열린 질문을 꺼낼 타이밍이다. 코스는 조명이 있고 사람이 적당히 오가는 공원 산책로나 호수 둘레길이 좋다. 혁신도시라면 대개 중심 공원과 수변 산책로가 가까이 있다. 연휴 밤에는 인파와 귀가 교통을 고려해 한 시간 안팎으로 끝내고, 헤어질 때는 '다음엔 낮에 걸어요'처럼 다음 약속의 문을 열어 두자. ■ 출처 · Hove & Risen (2009), It's All in the Timing: Interpersonal Synchrony Increases Affiliation, Social Cognition · Miles, Nind & Macrae (2009), The rhythm of rapport: Interpersonal synchrony and social perception,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